2010년 2월 2일 화요일

김영희 PD를 옹호하다

무한도전 복싱특집의 여운이 아직도 잔잔히 남아있네요.
굳이 승자와 패자를 가리지 않고 양쪽 다 껴안은 화면, 그리고 엔딩장면에서 3차방어전 안내멘트를 띄우면서 간접적으로 결과를 알려주었을 때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띱아 김태호 짱먹어라"가 울려퍼졌을 터.
그리고 분위기는 묘하게 요즘 죽을 쑤고 있는 김영희표 공익예능에 화살이 돌아갑니다.
깔끔쌈박한 김태호 예능과 구구절절한 김영희 예능.
두 타입의 줄기가 완전히 다른 건 아니지요. 테오PD도 조연출 시절 <느낌표> 등 공익예능에서 단련했고 지금 일밤 연출진 중에는 무한도전에서 경력을 쌓은 제영재 PD가 있으니까요.

 

 

한겨레 인터뷰에서 밝혔듯 김태호 PD는 구구절절한 사연을 요구하고 도움을 주는 것이 일종의 거래 같다고 느낍니다. 당시에도 일부에서 거론되던 부분이었어요. 방송국의 도움을 받기 위해선 게시판에 '내가 이렇게 불쌍하니 날 도와주세요'라는 취지의 신청서를 써내야 했으니까요. 어지간히 힘들지 않고선 할 짓 아니죠.
주말 예능이니 보긴 재미있게 보지만 한편 '저렇게 다 알려져서 괜찮을까. 전국적으로 얼굴 팔리는 건 물론이고 옛날 친구들, 옛날의 연인, 혹은 걱정할까봐 일부러 힘든 상황을 숨겨왔던 사랑하는 사람들도 다 알게 될 텐데…'하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당시 러브하우스에 선정되었지만 가족 중 끝끝내 카메라를 피했던 학생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해해요.
이런 방식은 현재 일밤에서 단비가 재생산하고 있습니다.
한편 무한도전은 최현미 선수의 (스릴 넘쳤을지도 모를) 탈북과정에 대해서도, 츠바사 선수의 (사연 넘쳤을지도 모를) 축구에서 복싱으로의 전환과정에 대해서도 딱 입을 닫아 버리고 현재의 모습에만 집중했습니다.


 

 

힘들어. 피곤해. 지쳐.

 

 

결국 대상을 다루는 방법론 문제인데요. 절절히 까놓는 방법과 살짝 숨기는 방법.
무한도전은 2007년 크리스마스 특집에서도 한 어려운 가정에 차량을 선물하면서 대상의 얼굴조차 보여주지 않았던 적이 있지요.
지금의 감성으로는 김영희 예능에 찬성하지 않지만 청소년과 청년기를 김영희표와 함께 보내 온 사람으로는 변호하고픈 부분도 있습니다. 시대상황이라는 변수도 있다는 거.
김영희 예능 시절에는 성금방송이 아닌 예능방송에서 한 일반인에게 막대한 도움을 준다는 컨셉 자체가 생소했던 시절이에요. 제작비를 좀 많이 써도 질타가 날아오는데 순수제작비 외의 금전 및 현물을 한 일반인을 위해 쓴다는 건 국민정서에 대한 모험이었죠.
그래서 국민에게 당위성을 얻기 위해 최대한 불쌍하고 구질구질하게 찍어야 했습니다. 봐요, 이 사람은 이렇게 불쌍하다구요. 이래도 마음이 안 움직여요? 그렇다면 당신은 냉혈한?

 

 

그렇게 힘들게 닦아놓은 길 위에서 후배들은 어느 정도 쿨하고 센스있게 공익예능을 찍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시청자들은 연출자가 방송을 만들기 위해 본인 재량 안에서 금전을 운용하는 방식에 대해 수긍하고 있어요.
공익예능에 대단한 사명감을 가진 김영희 PD가 그때 익숙해진 방법론을 아직 못 버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머리 이전에 몸에 배어있을 테니까요.
그렇다고 김영희 PD를 구시대적 연출자로 모는 분위기에는 찬성할 수 없어요. 예능에서 자막이 이렇게 중요해진 것도 그분이 시초였고, 영상 중 다른 영상을 끼워넣는 교차편집(무릎 팍 도사의 히말라야산 같은)을 처음 시도한 것도 그분이니까요. 새로운 것에 대해 닫힌 분이 아니라는 거.
당장 타방송의 젊은 PD들의 연출과 비교해 봐도 그렇게까지 구질구질하고 구시대적인 건 아닙니다. 억울한 마음도 있을 거예요. 비교대상이 없었다면 나름 칭찬도 들으면서 선전했을지도 모르는데 하필 같은 방송국에 이런 괴물이.

 

 

시청자는, 움직이는 거야

 

 

참견하고, 보듬어 주고, 그 결과를 모두에게 널리 알리는 게 미덕인 김영희 예능.
때로는 모른 척 하는 게 미덕임을 아는 김태호 예능.
시대가 이렇게 바뀌었네요. 사람이 시대를 바꾸었다는 게 맞는 말일지도.
저로서는 김영희 예능이 변화된 시대에 적응해 조금 더 감추고 끊는 미덕을 깨닫길 원합니다. 그 경박한 웃음소리를 더 듣고 싶거든요.

 

<이경규가 간다>때 이경규씨가 멘트만 치면 어느 스텝이 오디오 다 들어가게 미친듯이 웃길래 PD한테 싸대기 깨나 맞고 짤리겠다 생각했는데 다음회에 또 낄낄거리고 웃음. 매회 오디오 다 물리고 낄낄댐.
아무도 제지 안하길래 방송국 사장 아들인가 싶었는데 그게 김영희 PD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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