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5일 금요일

소주칵테일

거리에 살인자가 돌아다녀. 그는 괴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
알파벳 대문자를 보고 외치면 그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사물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어. 소문자는 안돼.
보도블럭의 이음매를 보고 X! 라고 외치면 옆 사무기기점에 진열되어 있던 제록스(Xerox) 복사기가 유리를 깨고 튀어나오는 식이야.
제일 무서운 기술은 B야. 사람을 보고 B!라고 외치면 몸속의 피(Blood)가 다 그를 향해 달려나가기 때문에 바싹 말라서 허옇게 죽고 말아.
우리쪽 능력자도 있지만 그는 S를 외쳐서 돌(Stone) 던지는 기술밖에 못 써. 그런 짓 해봐야 살인자도 실드(Shield )쳐버리면 끝인데.

 

그는 이유도 없고 구분도 없이 눈에 띄는 사람은 다 죽이고 다녀.
하지만 그에게도 한정조건은 있지. 밤에는 힘을 못쓰고 어딘가로 숨어 버린다는 거.
그래서 사람들은 낮에는 집을 버리고 폐업한 극장으로 모여들었어.
살인자는 외부인이야. 조용히 있으면 우리가 이 폐허에 모여 있다는 사실을 모를 거야. 거기 찡찡 우는 애 단속 좀 시켜요.
그 와중에도 용감한 방송인은 있어서 TV에서는 '자유의 소리 방송' 같은 게 흘러나왔어.
그런데 방송 내용이 뭐? 살인자가 하나가 아니라 여럿 있다고? 오 쎗.

 

사람들은 야음을 틈타 도시를 떠나기 시작했어. 어디든 좋아. 여기서 멀리 떨어진 곳. 저 징글징글한 허연 시체가 길바닥에 굴러다니지 않는 곳으로.
내 고양이들은 어느새 데리고 다니기 좋게 1개월 사이즈가 되어 있어. 착하다.
그런데 순찰 나가서 못 데려온 우리 큰아들 고양이는 어떻게 하지?
괜찮아. 걔는 영어를 모르니까 대문자의 영향을 받지 않을 거야.
캔 따는 소리는 기가 막히게 알아듣지만 그게 참치(Tuna)인지 연어(Salmon)인지는 모르잖아.

 

나와 고양이들은 자동차로, 기차로, 버스로 미친듯이 이동해서 작은 해안마을에 다다랐어.
평온해. 여기라면 나쁜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기력이 빠져서 손을 전봇대에 짚었어. 그런데
나한테 언제 포스트코그니션 능력이 생긴 거지? 전봇대가 보았던 광경이 눈앞에 그려져.
이런, 그놈이 여기 와 있잖아!

 

 

 

 


그러니까 소주칵테일 같은 괴한 술을 마시면 꿈자리가 뒤숭숭한 겁니다. 술은 섞으면 안돼요.

 

쇼츄와리 같은 거, 사도다!

댓글 6개:

  1. 과도한 영어교육 풍조를 날카롭게 풍자하는 꿈이로군요(...).

    근데 궁금한 게, 정말 그런 능력이 있으면 저를 보고 S라고 외쳐서 조종할 수 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아이디를 한글 '씨블루'로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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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왜 사람들은 소주를 마시는지 모르겠습니다 ㅠㅠ

    다른술은 괜찬은데 소주만 몸에서 안받아서 안먹는 1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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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의식의 흐름 기법을 응용한 초현실주의 소설 같군요. 빈말이 아니라 문학적인 센스가 상당히 있으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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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SeaBlue - 2010/02/05 22:18
    소문자는 안쳐주고 대문자만 취급하는 더러운 세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꿈속에 보고 외칠만한 S가 별로 없었던 기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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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밀리 - 2010/02/07 00:48
    우린 다 서민이잖아요...

    근데 저도 소주가 안받습니다. 마시고 나면 왼갖 악몽에 다음날 죽을 것 같은... 시원은 가끔은 괜찮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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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Y_Ozu - 2010/02/07 22:28
    저정도로 스토리라인이랄 게 있으니 기억에 남아서 적을 수 있었지요. 제가 꾸는 견꿈의 100건중 99건은 당최 스토리로 정리가 안되는 이미지의 잡탕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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